알기쉬운 한의학(韓醫學)
 
이글은 "쉽게 설명한 한의학"이란 인터넷 홈페이지의 글을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1. 한방에서는 병을 어떻게 보는가?
의학은 사람을 질병으로부터 구하고 건강을 유지시켜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치료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의학을 크게 서양 의학과 한의학으로 나누어 보면, 서양 의학은 질병의 원인이 주로 외부적인 인자 즉, 세균 이나 바이러스 등이라고 보기 때문에 치료 방법도 이러한 것들을 제거하는 데에 치중해 왔다.  이에 반하여 한의학에서는 질병의 발생 요인을 주로 사람의 기력, 곧 정기(正氣)가 약하여 인체를 방어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의학에서는 질병의 발생은 주로 저항 능력의 약화를 전제(前題)로 하여 생각한다.  감기를 예로 들면, 감기를 일으키는 병균이 인체에 침입하였더라도 그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면 병이 일어나지 않으나, 반대로 몸이 약하여 저항력이 떨어지면 미약한 병균일지라도 쉽게 인체에 침입하여 질병을 일으킨다고 본다.  또, 어느 한 질병의 발생을 단순히 몸의 일부분에 국한된 이상(異常)으로 보지 않고, 몸 전체의 생리적인 부조화(不調和)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한의학의 독특한 정체(整體) 관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인체의 조직이나 기관, 내장기는 각기 분리되어 따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 활동이라는 대전제 아래 기능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한의학에서의 치료 방법은 병균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체의 저항력을 기르는 데 맞추고 있으며, 질병을 치료할 때에도 이러한 상호 연관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여 치료하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고 국부적인 이상만을 제거하려고 할 때에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두통에 진통제를 먹고 열이 날 때 해열제를 먹으면, 통증이나 열은 제거될지 모르나 그 원인은 몸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올바른 치료 방법은 두통이나 열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 그 생리적인 부조화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한의학은 고유 의학으로서 지키고 가다듬어야 할 뿐만 아니라, 치료 효과가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으므로 건강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한의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겠다.
 
2. 한의학의 기원과 전래
한의학의 기원은 멀리 중국의 옛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요순(堯舜) 등의 전설적 인물이 한의학의 기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의학에서 최고(最古)의 서적이며 현재까지 한의학의 경전(經典)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전설적 인물인 황제(黃帝)의 이름을 빌려서 명칭을 붙였다.  그리고 신농은 일찍이 여러 가지 약의 효능을 밝혀 한약의 조상처럼 알려지고 있다.  그 약의 효능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는 책을 통하여 지금까지 전해 지고 있는 바, 이는 한약재에 대한 기본서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황제나 신농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이러한 책을 썼는가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의학이라는 것은 사람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의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옛 시대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를 거치면서 한의학은 원시적인 틀을 벗고 본격적인 이론과 기술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앞의 황제내경과 신농본초경도 이 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 후한(後漢)의 장중경(張仲景)은 상한론(傷寒論)을 저술하여 임상 의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송(宋)나라 이전에는 주로 처방을 중심으로 의학의 대중화가 이루어 져 왔으나,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성리학(性理學)이 크게 발전하자 이의 영향을 받아 의학도 처방이나 침술과 같은 치료 기술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는 한의학의 이론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음양오행설이 나타나면서 한의학의 체계가 과학적으로 정립되었다.
금원 시대(金元時代)에는 한의학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전염병이 크게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행하여져, 이 시대에 유명한 의사 4명 곧,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가 출현하게 되었다.  금원사대가는 유하간(劉河間), 장자화(張子和), 이동원(李東垣 ), 주단계(朱丹溪)를 말한다.
이렇게 이루어진 한의학 이론과 임상 방법은 명(明) 나라를 거쳐 청 (淸) 나라에 이르러 온병학(溫病學)이라는 새로운 장(章)을 열게 되었다.  온병학은 현대의 열성전염병(熱性傳染病)을 포함한 급성병(急性病)을 가리킨다.  온병학은 과거의 의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에 큰 문제가 되었던 전염병을 해결함으로써 한의학사상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가 의학 서적을 수입했다는 최초의 기록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있으며, 고구려 평원왕 3년에 중국 오(吳)나라 사람 지총(知聰)이 내외전(內外典), 약서(藥書), 명당도(明堂圖) 등 164권을 가지고 고구려를 거쳐 일본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이때 우리 나라는 중국의 의학을 최초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내외전은 황제내경, 외경(外經) 등의 의서를 말하고, 약서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명의별록(名醫別 錄) 등이며, 명당도는 침과 뜸에 관한 서적이다.
이보다 약간 후에 백제는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의 여러 나라로부터 의서를 수입하였는데,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에 이들 의서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래된 의학과 의서들은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에 이르러 민족적인 자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고려 시대 이전의 단순한 수입 의학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우리 나라 사람에 맞는 새로운 의학을 정립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론적인 면에서는 이렇다 할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약재와 처방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 시대 의학을 정리 종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시 새로운 의학 이론을 정립하여 중국에 견줄 만한 큰 성과 를 거두었으니,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동의보감(東醫寶鑑)이 그것이다.  향약집성방은 고려 시대에 편찬된 우리 나라 처방 의서들을 종합 정리하여 새롭게 출판한 것으로, 우리 약재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으며, 동의보감은 허준 (許浚)이 선조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의서이다.
그 중 동의보감은 중국에서 가장 발달된 의학이라 할 수 있는 금원사대가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아울러 역대 의서들을 총괄하여 독특한 방식으로 편집하였는데, 이렇게 뛰어나고 보기에 편리한 서적은 일찍이 없었으며,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逆輸出)되기도 하였다.  동의보감 이전의 의학이 중국 의학을 그대로 답습하였거나 중국 의학 이론에 국산 약재나 우리 기술을 사용해 온 것에 비하여, 동의보감 이후의 의학은 명실 상부한 우리 의학, 즉 한의학(韓醫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부심은 책 제목의 ‘동의(東醫)’라는 뜻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조선은 이미 세종 시대에 한국 의학의 자주적 기초를 마련할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고, 특히 향약의 연구와 보급은 한국인의 질병 퇴치에 획기적 업적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토대위에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함으로써, 한국 의학은 그 독자적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책 제목의“동의”(東醫)는 우리 의학이 중국 의학과 대등한 것임을 과시한 것이었다.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 우리 의학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니, 이제마(李濟馬)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의 출현이다.  이제마는 기존의 것과 다른 체질 이론(體質理論)을 도입하여, 각 체질에 따른 독특한 병리를 설명하고 치료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이를 사상체질 의학론(四象體質醫學論)이라 부른다.
이러한 자주적 정신을 이어받아 한의학(漢醫學)을 우리 고유의 한의학(韓醫學)으로 개칭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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